오랜만에 살 물건들이 몇 가지 있어서 지애와 함께 잠실 롯데백화점을 갔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슈퍼맨이 크립토나이트에 힘을 뺏기듯 힘이 빠지는 특이한 증세를 가지고 있다.
특히 백화점이 더한데, 오늘도 이 증상때문에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나는 일단 백화점에 들어서면 힘이 빠지면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이와 동시에 짜증도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 나의 변화를 안지애가 곧 감지한다. (안지애는 천성적으로 남의 기분을 잘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이러면 안지애 특유의 문제/불편함 해결하기 프로그램이 작동되면서
안지애는 문제/불편함 해결모드로 진입한다.
하지만 보통은 상황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안지애 역시 짜증지수가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점점 짜증나고, 안지애는 내 짜증을 풀어주려 노력하다 자신도 짜증이 나는 상황에 봉착한다.
여기까지 일이 진행되면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뿐이다.
"부부싸움"
그래서 이 일련의 과정의 출발점인 나의 백화점 포비아을 백화점 순회를 하면서 숙고해 보았다.
숙고 결과 하나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내가 백화점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과정이 어떤 일관된 순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1. 백화점의 상품, 사람, 포스트, 인테리어를 본다.
2. 그것에 대해서 평을 한다.
(물론 속으로, 당연하게 평은 좋지 않다. 비싼 돈 들였을 텐데, 인테리어 진짜 후지다. 라든가
저 인간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등등, 아.. 나도 이렇게 남들 평가하는거 고쳐야
되는지 알고 있다)
3. 그 평가를 내리는 자신을 평가한다.
(내가 왜 이렇게 평가하지? 내가 안목이 없어서 저 인테리어의 높은 수준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내지는 내가 무슨 권리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평가하지? 저 사람도 나름의 삶이 있고, 그 삶이
나보다 훨씬 존경할 만한 것일 수도 있잖아? 등등, 여기까지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이미지가 있는데,
후배 최혜진의 김승옥에 대한 글(누르면 해당 글로 이동)이다. 그때 최혜진은 축축함을 이야기하면서
김승옥을 자기검열이 지나치게 심한 사람으로 묘사를 했는데, 나도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혜진양 이글 보면 나의 생각에 대한 니 의견을 좀 말해줘)
4. 형이상학적인 세계까지 생각이 확장된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이 가능할까? 또는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거지? 내 어린 시절의
무언가가 영향을 미치나? 이런식으로도 연결된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남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걸까?
또, 이런 백화점처럼 상품을 사고 파는 행위, 또 그 근저에 있는 자본주의를 나는 왜 싫어하지?
이건 호불호의 문제일까? 아니면 옳고 그름의 문제일까? 등등)
5. 답은 나오지 않고, 머리를 계속 써서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힘이 빠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 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충격적이게도 나는
나는 백화점이라는 곳을 총체적으로 혐오하고 있었다!
그래서 왜 혐오하고 있을까를 또 탐구해보았다.
(나도 안다. 이런 내 생격이 조낸 까탈스럽고 피곤한지. 나에게 이런 사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같이 살면서 이 고통을 감내하는 안지애에게 위로라도 전해줘라)
첫번째 든 생각은 사람이 많아서였다. 하지만 난 청계6가 열대어 상점은 괜찮은데? 수족관도 괜찮은데? 동네시장도 괜찮은데? 문제는 사람의 많음이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좀 더 파고들어가 보았다.
혐오감 뒤에 숨어있는 백화점에 대한 나의 느낌은 거짓말이었다. 껍데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나에게 죽음이었다.
백화점은 나에게 죽음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공간을, 그 시스템을 몸서리치게 싫어하고
불편해하고, 힘들어했던 것이다.
시장은 살아있다.
거기엔 상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 있다.
상인들에게도, 손님에게도 상품은 상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시장의 상품에는 그 상품의 역사가 담겨있고, 그것을 상인들도, 손님들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백화점은 죽어있다.
거기엔 삶이 없고, 상품만 있다.
백화점의 상품에는 브랜드와 그 브랜드에 걸맞는 가격과 그 가격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런 나의 느낌은 나의 개인적인 성향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지나치게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 고쳐나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멋지고 세련된 공간과 사람들에게서 진실을 찾을 수가 없다.
여전히 답은 없다.
하지만 수확은 있다. 내가 왜 백화점을 싫어하는지는 알아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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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삼.
잘 돌아보고 오삼---
Enjoy when you can :-)
여행 조낸 한 니가 부럽다니.
난 이제 시작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