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엮음] 시간의 발견

Category :: 영화, 책


예전 중앙일보에서 독서감상문 대회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쓴 글입니다. 도서상품권 100장 받아서 책 원없이 샀던 즐거운 추억이 있는 글이죠.

우리는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존재한다. 모든 것은 시공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생명체, 운동, 관념 등 모든 것들이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인간 역시 이 한계를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린 시공간을 초월한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모든 생명체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만큼은 동일하다. 모든 존재의 공통분모는 시간과 공간이다. 인간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유는 시간과 공간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과 시간과 공간 즉 시(時)와 공(空) 사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은 자기의 한계, 자신을 둘러싼 주변세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알 수 있게 마련이다. 자신의 상황, 즉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계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었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공간은 모든 생물에게 보편적이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 시간은 인간이 시간에 대한 인식을 가진 후부터 항상 인간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보다 항상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모든 인간, 모든 문화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전승된다. 모든 문화는 자기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있다. 공간이란 곧 환경이다. 환경은 개별적이다. 문화권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곳은 춥고, 어떤 곳은 덥다. 또 어떤 곳은 사막이고, 어떤 곳은 섬이다. 공간이라는 것은 이처럼 물리적인 공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인종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공간은 지극히 개별적이다. 하지만 시간은 보편적이다.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차이는 있지만, 시간이 동일한 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든 문화권에게,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이다. 공간은 인간이 어떤 방법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해준다. 즉, 인간에게 생존의 방법을 보여준다. 한편 시간은 인간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해준다. 즉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공통 주제는 시간이다.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시간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문제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문화’이다. 지구상의 많은 생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만이 시간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시간의 흐름에 대해 다른 생명체들과 비교하여 유리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생물체다. 또, 시간을 축적할 수 있는 생물체다. 인간만이 시간을 인식하고, 시간을 측정하고, 시간을 관리하고, 시간에 대해서 생각한다. 인간만이 다양한 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승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만이 ‘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인간은 시간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간다워 질 수가 있었다. 시간이 이처럼 인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만큼 무의식적인 것 역시 드물다. 시간은 항상 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늘 의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인간은 시간에 속박될 수밖에 없다. 시간은 인간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이다. 우리는 항상 시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은 우리의 생활 속에 녹아있다. 이 때문에 시간을 어떻게 구분하고, 생각하는가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시간을 어떻게 구분하고, 생각하는가는 곧 어떤 문화를 가지게 될 것인가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T. S. Eliot의 'Four Quartets'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탐구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탐구의 목적은 우리가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고 처음의 그 자리를 아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있던 그곳으로 돌아가려면,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려면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면 우리는 ‘시간’을 알아야한다.

‘시간의 발견’은 시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시간을 ‘발견’해가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시간을 인식할 수 있었는지, 인간이 어떻게 시간을 구분하고, 측정하고, 지배하고, 시간에 지배당하는 지를 보여준다. 인간이 시간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날과 달, 해의 순환이었다. 매일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다시 달이 뜨고, 지는 모습을 통해서 날을, 달의 모양 변화를 통해서 달을 해와 별의 위치와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 해를 구분하게 되었고, 이것이 시간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시간의 발견은 곧 인간의 생활을 바꾸어 버렸다. 시간의 발견은 인간을 동물에서 인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은 시간을 성(聖)과 속(俗)을 나누고, 사냥하는 시간과 농사짓는 시간을 나누고, 결혼하고, 장례를 치르는 시간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을 발견하게, 구분하게 됨으로써 시간을 관장하는 사람에게 권력이 모이게 되고, 이로써 계급이 생기게 되었다. 인간은 점점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되고,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고정된 시간단위를 가지게 되었다 마침내 인간은 하루에 24시간, 1시간에 60분, 1분에 60초라는 고정불변의 선형적인 시간단위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로써 인간은 시간에 예속되게 된다.

‘시간의 발견’은 시간의 여러 가지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시간측정과 구분의 발달사이다. 시간측정과 구분의 변천사는 곧 인간사회의 변천사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인간의 생활을 관장한다. 권력자들은 해와 달을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려하고, 과학은 하루를 쪼개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려한다. 한 달을 며칠로 할 것인가? 또는 한 해를 몇 달로 할 것인가? 는 조직과 권력의 문제이다. 고대로부터 해와 달을 어떻게 나누는가는 항상 권력의 문제였다. 이에 비해 하루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는 과학의 문제이다. 인간이 하루의 시간을 얼마나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가에 따라서 하루는 달라지게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를 어떻게 구분했고, 달과 해를 어떻게 구분했는가는 인간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권력을 유지했고,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사용했는지, 또 인간이 어떻게 외부를 이해하고, 분석했는지를 시간측정의 변천사를 통해서 우린 알 수 있다. 이처럼 시간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모른다. 우리 체내에 시간을 측정하는 기관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경험한 사건들에 대한 두뇌의 해석 작용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시간의 발견’은 시간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면뿐만 아니라 시간의 생물학적인 면도 제시하고 있다. 즉, 인간이 어떻게 생물학적으로 시간을 측정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그 결과물을 보여준다. 또 수많은 철인들의 머리를 어지럽혔던 시간에 관한 철학적인 논의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의 최소 단위란 있는가? 시간은 언제 생겼는가? 조지 오웰이후 사람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온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가? 등등에 대한 물음들을 제시한다. 시간은 인간의 삶이다.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시간이다. 고갱이 던졌던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해답은 시간에 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5/11/07 19:00 2005/11/07 19:00

trackback :: http://thedreamis.com/trackback/286
  1. Thedream 2005/11/07 19:10

    흠.. 바로 밑에 글에서 보았던 Eliot의 시가 여기서도 보이는군요.. 이걸 왜 이렇게 자주 썼을까요? 글을 대충 보니 이때 엘리아데의 '성과 속'이라는 책도 본거 같군요.. --;

  2. Thedream 2005/11/08 11:21

    다시 이 글과 아랫 글을 읽어보니, 논리가 아주 흡사하군요..
    흠.. 자신의 정체성과 과거, 역사 등등이 이때 화두였나보네요.
    이렇게 두 개를 비교하니 밑천이 다 드러나는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