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 인생 성적표를 받는 것..Category :: 생각들 |
금요일밤 교회에서 모임을 끝내고 가정교회 식구들이랑 차를 타고 오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나보고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 가는게 아니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우리 예전에 부르던 찬송 봐라.
이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뭐라 말할까?
그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뭐.. 이런 요지의 말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는대로 제가 원래 행동은 기어가면서 생각과 말은 하늘을 날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개념 안드로메다로 관광보낸 발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죽은 다음에 진짜 하나님 앞에 서서 인생이라는 시험에 대한 성적표를 받게 되면 어떨까?
죽음이 시험 성적표 받는 일이라면 과연 출제의도는 뭘까?
또, 채점기준은 뭘까?
라는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해서 먼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시험을 볼 때는 크게 두 가지가 중요한 거 같습니다.
첫째는 "누가 시험을 출제하는가?"이고,
두번째는 "누가 채점을 하는가?"입니다.
즉, 출제기준과 평가기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죠. 인생 평가에 있어서 다행스러운 점은 출제자와 채점자가 같은 분이라는 것이죠. 이게 다르다면 낭패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진전이 되니까 좀 당혹스러워 지기 시작하더군요.
우리는 보통 연봉, 집안 환경, 외모, 성공, 지식, 명예 이런 것들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니 좀 암담해 지더군요.
"그래 넌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
"네, 저는 책을 백만권 읽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통달했습니다."
"그건 내가 다 만들어서 아는 것들 아니냐?"
"그래 너는 인생에 어떤 답을 썼느냐?"
"네, 저의 인생은 수많은 성공한 프로젝트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몇 번의 실패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남들이 다 인정해주는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은퇴해서는 강연도 많이 다니고, 책도 썼습니다."
"여기에 회사가 있으면 너를 좀 썼으면 좋겠구나. 니가 잘 이끌 회사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말이다."
이렇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걱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인생 시험 출제의도와 평가기준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제가 존경하는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님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신부님,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또 해 온거 같습니다. 그런데, 본질이란 결국 출제자와 평가자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꽃병의 본질은 꽃병을 만든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듯이 말이지요. 꽃병이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이야기해보아야 별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없고, 믿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참 생각이 없이 살았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좋아하고, 생각이 깊다고 자부하며 살았던거 같은데,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어쩌면 이렇게도 개념이 없이 살았는지..
개념은 결국 기준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기준이 없는 사람은,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은 그 무엇도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겠지요.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이편에 선 사람입니다란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대한 진실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참 앞으로 갈 길이 멀게 느껴지는군요..
다들 나중에 만점 받기를 바랍니다~
"나보고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 가는게 아니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우리 예전에 부르던 찬송 봐라.
우리 뭐라 말할까?
그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뭐.. 이런 요지의 말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는대로 제가 원래 행동은 기어가면서 생각과 말은 하늘을 날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개념 안드로메다로 관광보낸 발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죽은 다음에 진짜 하나님 앞에 서서 인생이라는 시험에 대한 성적표를 받게 되면 어떨까?
죽음이 시험 성적표 받는 일이라면 과연 출제의도는 뭘까?
또, 채점기준은 뭘까?
라는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해서 먼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시험을 볼 때는 크게 두 가지가 중요한 거 같습니다.
첫째는 "누가 시험을 출제하는가?"이고,
두번째는 "누가 채점을 하는가?"입니다.
즉, 출제기준과 평가기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죠. 인생 평가에 있어서 다행스러운 점은 출제자와 채점자가 같은 분이라는 것이죠. 이게 다르다면 낭패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진전이 되니까 좀 당혹스러워 지기 시작하더군요.
우리는 보통 연봉, 집안 환경, 외모, 성공, 지식, 명예 이런 것들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니 좀 암담해 지더군요.
"그래 넌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
"네, 저는 책을 백만권 읽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통달했습니다."
"그건 내가 다 만들어서 아는 것들 아니냐?"
"그래 너는 인생에 어떤 답을 썼느냐?"
"네, 저의 인생은 수많은 성공한 프로젝트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몇 번의 실패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남들이 다 인정해주는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은퇴해서는 강연도 많이 다니고, 책도 썼습니다."
"여기에 회사가 있으면 너를 좀 썼으면 좋겠구나. 니가 잘 이끌 회사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말이다."
이렇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걱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인생 시험 출제의도와 평가기준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제가 존경하는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님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또 해 온거 같습니다. 그런데, 본질이란 결국 출제자와 평가자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꽃병의 본질은 꽃병을 만든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듯이 말이지요. 꽃병이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이야기해보아야 별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없고, 믿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참 생각이 없이 살았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좋아하고, 생각이 깊다고 자부하며 살았던거 같은데,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어쩌면 이렇게도 개념이 없이 살았는지..
개념은 결국 기준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기준이 없는 사람은,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은 그 무엇도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겠지요.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이편에 선 사람입니다란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대한 진실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참 앞으로 갈 길이 멀게 느껴지는군요..
다들 나중에 만점 받기를 바랍니다~
trackback :: http://thedreamis.com/trackback/2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