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손님

Category :: 영화, 책


주아기 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점점 글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
아직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잘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소위 헛똑똑이라고들 하는 것이죠
머리에 든 건 좀 있는데, 정리를 못하는 이런 경우를 말합니다.
다음에는 좀 더 잘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헐


안녕하세요? 충신가정교회 김선규입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께는 송구스런 말이지만, 서른이 넘으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한 해가 시작된 것이 얼마 전 같은데 벌써 반이 훌쩍 지나,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6월이니 말입니다. ‘호국보훈’, 참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배운 말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목숨으로 나라를 지키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이것을 이해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늘 나라 잃은 서러움을 겪던 유태인의 예를 들어가며 나라의 고마움을 이야기하고, 나라가 위급해지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호국보훈’하는 것은 항상 이것 이상의 가치가 부여되었던 것 같습니다. ‘왜?’ 라는 질문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그저 무조건 지켜야 된다는 것을 배울 뿐입니다. 이렇게 듣고, 배워서 결국 아무런 의심 없이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런 당연한 생각들, 규범들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과 규범들은 보통 상식이라고 불리고, 왜 라는 질문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켜야 하는 것이고, 당연한 것일 뿐입니다. 물론, 어길 경우 상당한 죄책감과 주변의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이번 달에는 이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좀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북한에 가보고 나서 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괴물이 아닌, 빨갱이라고 불리는 무엇이 아닌 우리 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괴리감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가 받은 교육에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받은 반공교육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이데올로기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이 이데올로기 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이데올로기만큼 무서운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무서운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외면하곤 합니다만, ‘기독교’라는 이름 하에 자행된 일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전에만 있던 일도 아닙니다. 가끔씩 이지만, 쓰나미같은 안타까운 재앙을 보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아닌 무엇들로 사람을 나누지요.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호국보훈’의 경우와 동일합니다. 이유를 묻지 않고 무조건 그렇다 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만약, ‘종교’와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두 힘이 부딪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이런 일이 1950년 황해도 신천군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양민 3만 5천명이 살해당했습니다. 그것도 같은 신천군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이 중 어린이와 여성이 절반에 가까운 1만 5천명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소설가 황석영씨가 ‘손님’이라는 소설을 통해 소개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라는 손님과 ‘사회주의’라는 손님이 벌인 이 사건을 아주 새로운 형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류요섭이라는 목사입니다. 류요섭 목사는 고향에서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 서로를 학살했던 끔찍했던 50년 전의 기억을 품고 조용히 살아갑니다. 이야기는 류요섭 목사가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신천을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황석영씨는 이 소설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리얼리즘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 동안 생각했던 리얼리즘은 현실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사실적으로, 아무런 주관적인 판단 없이 보는가에 달려있었습니다. 하지만, 황석영씨의 주장은 다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진정한 리얼리즘이란 각각의 생각을, 각각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이것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진짜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은 류요섭 목사 한 사람이 아닙니다. 죽은 그의 형, 예전에 동네 사람들이 귀신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의 사정과 그들의 입장과 그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신천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여진 신천군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북한군이 신천군을 점령했을 때는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같은 동네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한과 미국이 신천군을 점령했을 때는 기독교인들이 기도하며, 찬송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친구들을, 동네 아저씨를, 옆집 아이들을 살해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지 의아해합니다. 저는 이것이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규정된 무엇이 되는 순간, 인간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 지금 내가 누군가를, 아니면 어떤 것을 너무 쉽게 종교적인 기준으로 판단해버리고 있다면, 한 번쯤 이 소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시선과 생각이 얼마나 폭력적인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손님’이 우리를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책이지만 그만큼 우리를 성숙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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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5 13:28 2006/06/0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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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chuuk 2009/10/14 16:31

    소설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는 좋은 것 같으나, 황석영씨는 그 소설에서 기독교 사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행했던 일들은 하나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요.
    종교적으로 나아갈 때 사람들은 광기만 있고, 휴머니즘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과거 십자군 전쟁이 그랬지요. 그러나, 그 소설에서 기독교만을 비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건 작가가 진실을 비튼 작품을 썼기 때문입니다.

    • thedream 2009/10/14 19:35

      제가 봤을 때는 황석영 작가는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독교를 더 비판한다는 점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더 비판한다고 해도, 그러면 안된다는 법은 없으니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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